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사극영화는 역사의 영웅을 재조명해서 일명 국뽕이라는 장르가 되거나 아니면 혼란 속의 서민들의 애환 등을 그리는 눈물바람나는 영화가 되기 일쑤인데 남한산성은 사극 장르에서 그 궤를 전혀 달리하는 영화이다. 국난 속에 영웅도 없으며 시종일관 치욕의 역사에 대한 냉철한 시각이 있을 뿐이다. 사극 영화의 명작 남한산성을 알아보자.
1. 병자호란, 그 선택의 기로에 서서
역사가 스포인 사극영화인 여느 다른 영화와 마찬가지로 누구나 잘 알고 있는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영화 남한산성이다. 1636년 인조 14년, 중국은 명나라가 쇠퇴하고 청이 번성하게 되는데 청이 조선에 요구하는 군신관계를 조선이 거절하게 된다. 국제정세 따위에는 관심도 없던 조선의 조정 대신들은 쇠퇴하는 명의 명운도 모르고 청은 오랑캐라 배척하는데 결국 병자년 12월 청이 조선을 침략하고, 인조는 남한산성까지 피신을 떠나는데 기병을 앞세워 빠르게 치고 오는 청의 대군에 둘러싸여 성 안에 고립된다. 청은 신하가 되는 것과 세자를 청의 인질로 데려가는 등의 무리한 요구를 해오는데, 이를 두고 순간의 치욕을 견디고 나라와 백성을 지켜내야 한다는 이조판서 최명길과 치욕을 견딜 수 없으니 맞서 끝까지 싸우는 것이 맞는다는 예조판서 김상헌의 팽팽한 대립. 그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인조의 갈등을 다루고 있다. 병자호란 그 선택의 기로에 서서 펼쳐지는 45일간의 사투를 치르지만 결국은 우리가 아는 대로 삼전도의 굴욕을 당하고 만다. 항복하는 것도 치욕스러운데 인조는 추운 겨울에 먼 길을 걸어 삼전도에 있는 청 태종에게 가서 항복의 3배 9고두를 해야 했던 것. 상복을 입고 3번큰절을 하고 9번 땅바닥에 머리를 박아서 절하는 소리가 다 들리도록 하는 인사법으로 인조의 이마에서 피가 났다고 전해지는 조선 치욕의 순간 중 하나. 이 모든 45일간의 기록이 영화에 담긴다.
2. 김윤석 이병헌 그리고 박해일의 연기 열전
영화 남한산성의 가장 큰 관전 포인트는 이조판서 최명길 역의 이병헌과 예조판서 김상헌 역의 김윤석의 팽팽하게 대립된 토론과 그 사이에서 큰 고민에 빠지는 인조 역의 박해일의 연기 열전이다. 어떻게든 살아서 후일을 도모하는 게 맞는다는 최명길의 안타깝지만 이성적인 판단과 설사 멸망 하더라도 맞서 싸워야 한다는 김상헌은 마치 물과 불같은 상반된 캐릭터. 영화의 대부분을 이 두 가지 의견의 대립으로 인해 서로 창과 방패가 되어 열띤 토론을 하는 장면이 끌고 가기 때문에 대사의 양도 방대하고 그 대사의 힘으로 극을 끌고 가는 배우들의 힘이 엄청나게 중요하다. 어떠한 액션 없이 치열한 대화만으로 연기하는 이병헌과 김윤석의 연기 내공에 찬사를 보내기에 부족함이 없다. 특히 이성적인 판단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마음속에는 뜨거운 불같은 충정을 가진 최명길의 흥분되지만 절제된 듯 느껴지는 대사처리. 반대로 불같이 뜨겁게 싸울 흥분만이 가득한듯하지만 냉정하게 뱃사공을 베어버리는 이성적인 판단 또한 놓치지 않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김상헌의 담담한 대사처리. 모든 것이 완벽한 둘의 연기가 있었다면 이 둘의 가운데서 중화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유약한 왕의 모습을 완벽하게 연기한 박해일의 연기도 일품이었다. 이병헌과 김윤석의 강하고 강한 연기만 이어지는 속에서 박해일의 연기는 물 흐르듯 둘을 연결하는 남한산성의 완성 포인트라고 할 수 있겠다. 김윤석 이병헌 그리고 박해일 이 세 배우의 연기 열전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가치 있는 영화.
3. 상반된 흥행과 평가
손익분기점이 대략 500만 명 정도였으나, 384만 명에 그치는 흥행 성적이 나왔다. 지금은 오징어 게임으로 세계적인 감독이 된 황동혁 감독의 전작이 수상한 그녀였고, 주인공들이 이병헌 김윤석등 쟁쟁했으니 그에 못 미치는 성적이다. 흥행 실패 원인에는 비슷한 시기의 범죄 도시나 킹스맨 등의 오락영화에 비해 무거운 주제를 다루었다는 것이 크다. 게다가 흔히 사극에 바라는 국뽕이 전혀 없고 영웅 또한 없는 철저히 조선의 패배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는 것에서 거부감이 있었을 것이다. 그 패배에서 오는 영화 전반에 깔리는 암울하고 무거운 분위기 때문에 다양한 관객이 들기 어려웠던 것. 하지만 그에 비해 영화 자체에 대한 평가는 좋다. 작품 완성도가 높고 연기력이 뒷받침되어 담백하게 역사를 서술하는 여태 한국에는 없던 새로운 사극의 형태의 영화였기 때문이다. 특히 소설의 원작자인 김훈 작가가 시사회나 다른 매체를 통해서도 소설로 표현하고자 했던 의도를 영상으로 정확하게 잘 표현했다는 칭찬을 한 것을 보면 작품성만은 확실히 인정된다. 개봉 당시에는 흥행 실패로 극장에서 보는 사람이 적었지만 추후 TV나 OTT를 통해 접한 사람들이 작품을 극찬하고 인생 영화로 꼽는 사람이 있는 것을 보면 좋은 영화는 결국은 알아주는 것 같다. 아쉬운 성적의 흥행과 그에 상반된 평가가 있는 남한산성을 정말 강력히 추천한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