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산벌, 왕의 남자, 사도 등 사극영화를 여러번 연출한 대가 이준익 감독의 작품이다. 2021년 개봉작으로 흑백의 화면을 통해 전해지는 담담한 주인공들의 이야기가 꼭 수묵화처럼 연출되어 있다. 담백한 수묵화 같은 영화 자산어보를 소개한다.
1. 알고 보면 쓸모 있는 자산어보의 시대적 배경
실존 인물인 정약전이 집필한 자산어보라는 책의 탄생과 배경에 대한 이야기를 영화로 담았기 때문에 그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알고 보면 더욱도 재미있게 즐길 수 있다. 정약전은 우리가 조선시대의 천재로 잘 알려진 정약용의 형으로 신유박해로 귀양살이를 하는 인물이다. 신유박해는 일명 천주교 박해라고 알려져 있는데 정조의 아들 순조 시대에 노론 벽파의 정순왕후를 필두로 이루어졌다. 정조는 사도세자의 죽음의 배후인 노론 벽파를 배척하고 실용적인 학문을 연구하고 배우는 개혁적인 노론 사파를 중용한다. 그러나 정조가 갑자기 사망하자 다시금 노론 사파를 탄압하게 되는 것이다. 이 신유박해로 인해 천주교도가 많았던 사파는 많은 타격을 받게 되는데 그중 사학과 천주교의 핵심 인물인 정약용은 전라도 강진으로 그보다 더 강경한 정약전은 흑산도로 귀향 보내지게 된다. 두 형제는 각별한 사이로 정약용이 정약전을 아주 잘 따랐다고 하는데 영화 속에서도 편지를 자주 주고받는 모습이 그려진다.
2. 신분의 뛰어넘은 정약전과 창대의 브로맨스
흑산도에 온 정약전은 한 번도 관심 가져 본 적 없던 다양한 해양 생물들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다. 실학자답게 다양한 해양생물을 설명하는 책을 만들어 서민들의 실생활에 도움을 주려고 결심하고 흑산도에서 물고기 박사로 유명한 창대에게 도움을 청한다. 창대는 흑산도에 사는 청년으로 어부로 먹고 살고 있지만 학문에 관심이 높은 인물이다. 아버지는 양반이지만 첩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상놈의 신분으로 살 수밖에 없는데 학문을 갈고닦아 아버지에게도 인정받고 벼슬도 하고 싶은 욕망이 있다. 이런 그에게 혼자 하는 공부는 진척이 별로 없었고 그런 시기에 정약전에게 공부를 도와 줄테니 물고기 지식을 알려달라는 제안을 받는다. 사실 이 시대의 학문은 성리학을 기반으로 하는 것으로 성리학을 바탕으로 공부해온 창대에게 서학과 예수를 믿는 정약전은 큰일 날 사람으로 자신이 물들까 걱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창대는 정약전을 스승으로 모시고 학문을 배우게 되고 정약전 또한 창대의 도움을 받아 물고기 지식을 습득하는데 서로가 서로에게 스승과 제자가 되는 시작이다. 그렇게 배워 가는 과정이 그려지는데 흑백과 조선시대라는 배경이 무색하게 정약전과 창대의 티키타카 브로맨스를 보는 재미가 가득하다. 물론 둘의 티키타카는 확연히 다른 학문의 목적 때문에 더욱 도드라지는데 서학과 천주교를 받아들이며 개방적인 성향의 정약전은 배움에 있어서는 상놈도 양반도 임금도 없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학문은 그 자체로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데 목적이 있다고 믿는 인물. 반대로 창대는 성리학을 기반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임금도 상놈도 양반도 평등하다는 소리는 천지가 개벽할 소리다. 게다가 자신을 버리고 간 양반 아버지의 인정을 받기 위해 시작한 공부이니 지금으로 생각하면 우리의 중고등학교 때 오로지 좋은 대학 좋은 취업을 위해 달리는 공부와 같다. 그런 창대를 지켜보는 정약전은 실제로 벼슬에 올라서 느끼는 부정부패들에게서 창대를 구하려고 흑산도를 떠나지 말라고 말리지만 창대는 학문을 아버지께 인정받아 신분상승하고 벼슬길에 나선다. 그 후 창대가 떠나고 그를 그리워하는 정약전은 점점 쇠약해지고 창대 또한 탐관오리의 실제를 마주하고 스승의 참 사랑을 깨닫지만 스승을 찾아 다시금 돌아왔을 때는 정약전이 사망한 후다.
3. 자산어보의 평가와 의미
백상예술대상에서 영화 부분 대상을 청룡영화상에서 남우주연상, 각본상, 편집상 등 다양한 상들을 수상했다. 수많은 수상에서 알 수 있듯이 영화는 평단에서도 관객들에게서도 호평을 받았는데 담백하게 그려진 흑백의 영상과 큰 사건이 없어도 주인공 둘이서 주고받는 대사와 둘의 주변에서 다양한 연기로 빼곡히 채우는 대단한 조연들의 연기가 정말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영화 속에 녹아있기 때문이다. 특히 자산어보를 통해 처음으로 사극 연기에 도전한 설경구는 처음이라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사극에 어울려서 역시 설경구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다. 자산어보는 기존의 사극영화에서 그려지는 기득권의 양반에 대항하는 서민들에 대한 이야기 혹은 탁상공론만 하는 양반과 신분의 벽 때문에 능력 있지만 알아주지 않는 천민의 이야기들과 정반대 선상에서 이야기를 했다는 것에서 차별점을 가진다. 양반이지만 개혁을 위해 노력하는 깨어있는 양반, 상놈이지만 성리학에 심취해 그 길만이 진리라고 생각하는 외골수 같은 상놈. 이런 다양함을 보여줬다는 것이 사극으로 그리고 영화의 다양성 면에서 자산어보를 평가하고 그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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